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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지식을 세상에 퍼뜨리는 사람 — 구요한의 저자 블로그

지식의 지형학 1부 — 그리고(And)의 세계, 리좀이 그린 태그의 풀밭

풀밭 아래로 뻗은 리좀의 뿌리 네트워크

사과는 어디에 있는가

#사과.

이 태그 하나로 무엇이 떠오르는가? 과일 코너의 빨간 사과? 뉴턴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사과? 백설공주가 한 입 베어 문 독사과? 아니면 스티브 잡스의 한 입 베어 먹은 로고?

폴더 시스템이라면 사과는 하나의 장소에만 있을 수 있다. '과일' 폴더에 넣으면 '물리학' 폴더에서는 사라진다. '동화' 폴더에 넣으면 'IT 기업' 폴더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과는 이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가?

필자가 지식관리 강의에서 즐겨 드는 차돌짬뽕 예시도 마찬가지이다. 냉면과 함께 있으면 '면요리', 탕수육과 함께 있으면 '중화요리', 침착맨과 단군 사이에 있으면 '철면수심'이 된다(유튜버 철면수심의 별명이 차돌짬뽕이다). 하나의 대상이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폴더는 맥락을 하나만 허용한다.

이것이 나무(Tree) 구조의 한계이다.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깔끔하지만 경직되어 있다.

풀밭이라는 대안

1980년,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완전히 다른 구조를 제안했다. 리좀(Rhizome). 감자나 생강의 뿌리줄기처럼 중심 없이 수평으로 퍼져나가는 네트워크이다.

나무가 위계적이라면, 리좀은 수평적이다. 나무에 중심이 있다면, 리좀에는 중심이 없다. 나무가 가지를 자르면 끝이라면, 리좀은 끊어져도 다른 곳에서 다시 이어진다.

들뢰즈의 논리는 접속사 '그리고(And)'이다.

#사과 그리고 #뉴턴 그리고 #백설공주 그리고 #IT. 태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And'이다. 하나의 데이터가 가질 수 있는 맥락을 무한히 늘린다. 상위 폴더에 갇히지 않고, 수평적으로 사방으로 연결된다.

이 철학자들이 컴퓨터 과학자가 아니었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40여 년 전에 그린 이 그림이 오늘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태그 시스템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태그는 탈주선이다

들뢰즈는 '줄무늬 공간(Striated Space)'과 '매끄러운 공간(Smooth Space)'을 대비시켰다. 줄무늬 공간은 격자로 나뉘고 통제되는 공간이다. 폴더 시스템이 정확히 그렇다. 각 파일은 정해진 칸에 들어가야 한다.

반면 매끄러운 공간은 유목민의 공간이다. 정해진 길 없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태그 시스템이 바로 이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여행 #카페 #서울을 동시에 붙이면, 하나의 사진이 세 개의 서로 다른 세계와 동시에 연결된다. 경계를 넘어 정보의 바다를 자유롭게 유목하는 것. 들뢰즈는 이것을 '탈주선(Line of Flight)'이라 불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어셈블리지(Assemblage)' 개념이다. 다양한 요소들이 임시로 모여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다가, 해체되고, 다시 다른 조합으로 모이는 것. 지난달에는 #프로젝트A #리서치 #긴급으로 묶였던 자료가, 이번 달에는 #프로젝트B #참고자료 #아카이브로 재배치된다.

들뢰즈는 이 과정을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라 불렀다. 기존의 분류를 해체하고(탈영토화),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의미를 부여하는 것(재영토화). 태그 시스템은 정적인 파일 캐비닛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살아있는 지식 생태계이다. '생성(becoming)'의 과정 그 자체.

생성형 AI가 문서를 분석하여 자동으로 태그를 제안하는 시대에, 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는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태그는 단순한 라벨이 아니라, 지식이 해방되고 재조합되는 장치이다.

그러나 풀밭에는 함정이 있다

필자의 옵시디언에는 5,300개가 넘는 노트가 있다. 태그와 위키링크라는 리좀적 연결 덕분에, 3년 전에 적어둔 파인만의 물리학 메모가 어제 준비하던 AI 강의 자료와 만나게 된다. 예측하지 못했던 연결이 새로운 통찰을 만든다. 이것이 리좀의 힘이다.

하지만 여기서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보인가 소음(Noise)인가?

태그를 50개씩 붙여놓은 노트는 아무 태그도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들뢰즈의 매끄러운 공간에는 아름다운 자유가 있지만, 길을 잃기도 쉽다. 리좀은 복잡성을 증폭(Amplification)시킨다. 이것은 창조적 혼돈이 될 수도 있고, 그냥 혼돈이 될 수도 있다.

필자의 볼트에도 잡초가 있다. 한 번 붙이고 다시 찾지 않은 태그들. 붙이던 순간에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찾는 순간이 오지 않는 태그는 연결이 아니라 흔적이다. 그래서 요즘은 태그를 붙일 때 하나의 질문을 통과시킨다. 미래의 내가 어떤 장면에서 이 단어로 검색할 것인가. 그 장면이 그려지지 않으면 붙이지 않는다. 태그는 붙이는 순간이 아니라 찾는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리좀은 저절로 자라지만, 풀밭은 저절로 정원이 되지 않는다.

들뢰즈는 '그리고(And)'의 논리로 세상을 연결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한 사람이 있다. 독일에서 9만 장의 메모 카드로 70권의 책을 쓴 한 사회학자. 그의 이름은 니클라스 루만이다.

다음 편에서 만나자.


더 읽을거리

  • 📚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김재인 역, 새물결) — 리좀, 어셈블리지, 탈주선의 원전
  • 📚 티아고 포르테, 《세컨드 브레인》 — 디지털 지식관리의 실천적 입문
  • 🎬 다큐멘터리 《Everything is a Remix》 — 연결과 재조합의 창조성
  • 🎬 TED Talk: Steven Johnson, "Where Good Ideas Come From" — 느린 직감과 연결의 창발성
  • 🛠️ Obsidian — 리좀적 지식관리를 실현하는 도구
  • 🛠️ Neo4j — 그래프 데이터베이스로 리좀 구조 구현
이 글을 인용하려면
구요한. (2026). 지식의 지형학 1부 — 그리고(And)의 세계, 리좀이 그린 태그의 풀밭. 紙散(지산). https://jisan.cmdspace.work/posts/topology-of-knowled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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