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散Jisan

기록으로 지식을 세상에 퍼뜨리는 사람 — 구요한의 저자 블로그

곳간이 아니라 길이었다

더배러 3주년, 내가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며

3년을 돌아보기 위해 지난 글들과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2023년 7월 10일, 네 명에게 더배러 첫 글을 보냈다. 3년 뒤 233번째 글은 1,021명에게 닿았다. 글과 강의, 대화와 모임이 이어졌고, 세컨드 브레인과 옵시디언을 지나 이제는 AI와 함께 일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숫자와 목록을 보며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성취감이 아니었다. 정말 이렇게 많은 일을 했나 싶은 놀라움과, 그 시간을 견디게 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묻게 되는 느린 호기심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3년 동안 해온 일의 중심에는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지식은 나눌 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비로소 커지기 시작한다는 믿음이다.

나눈 지식이 나를 키웠다

지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면, 나눠줄수록 내 몫이 적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지식은 그 반대로 움직였다.

글로 설명하려고 하면 얼개가 더 분명해졌다. 강의에서 질문을 받으면 내가 모르는 부분이 보였다. 누군가 내가 나눈 방법을 자기 일에 적용하고 그 결과를 다시 들려주면, 처음에 내가 건넸던 지식보다 더 크고 구체적인 지식이 되어 돌아왔다.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의 앞뒤였다.

더배러는 그 순환을 눈앞에서 보게 한 장소였다. 누군가 시행착오를 꺼내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자기 삶에서 실험했다. 하나의 질문이 다른 사람의 답을 불러왔고, 그 답은 다시 새로운 질문이 되었다. 내가 만든 공동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 순환 안에서 나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더배러에서 오래 함께한 한 분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2년 전부터 이야기한 "나만의 맥락정보"라는 말을, 옵시디언과 씨름한 지 8~9개월이 지나서야 이해했다고 했다. 읽다가 멈췄다. 나는 때로 같은 속도로 걷지 않으면 함께 가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내 메시지를 빨리 전하는 일에 마음이 앞서, 각자의 속도로 삭히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 메시지는 지식을 건넨다는 것이 상대를 내 속도로 끌어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씨앗을 건네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시간 안에서 자라도록 기다리는 것이었다.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나는 pay it forward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것을 넘어, 내가 받은 좋은 것을 아직 모르는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들은 대부분 내가 처음부터 만든 것이 아니다. 선생님의 한마디, 책에서 만난 문장, 동료가 보여준 일하는 방식, 학습자가 던진 질문을 받았다. 내가 그 빚을 갚는 방법은 받은 것을 내 안에 오래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과 언어를 더해 다시 세상으로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기록은 저장이 아니라 나눔의 준비다. 마크다운은 단순한 기술 문법이 아니라, 배운 것을 다른 사람이 다시 쓸 수 있는 형태로 담는 그릇이다. 옵시디언과 AI 에이전트를 연구해온 것도, 기업 강의장과 작은 모임을 오가며 가르쳐온 것도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이 삶으로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이 자기 삶에서 쓸 수 있는 지식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더배러는 그 질문을 3년 동안 실제로 살아본 장소였다.

이어령 선생님의 질문 곁에서

이어령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도 이 질문과 맞닿아 있다.

선생님은 새로운 기술을 신기한 도구로만 다루지 않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맞세우지 않고 '디지로그'라는 새로운 언어 안에서 다시 만나게 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의 감각과 기술의 가능성을 함께 붙들고, 그 관계를 설명할 말을 만들어냈다. 내가 존경하는 것은 그 몇 개의 개념어만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호기심을 끊지 않으면서도, 기술 안에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한 태도다.

그분의 서재와 영인문학관을 생각하면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한 사람의 오랜 공부와 사적인 기록이 책장 안에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가 접근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공적인 기억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지식을 보존한다는 것은 박제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건네질 수 있는 상태로 두는 일임을 그 공간이 보여준다.

나는 선생님의 이름이나 업적을 이어받겠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말은 조심스럽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크다. 다만 선생님이 던진 질문 곁에서 내 몫의 질문을 계속하고 싶다. AI가 언어와 지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시대에, 사람이 삶으로 익힌 것을 어떻게 지키고, 기록하고, 다시 나눌 것인가. 그것이 지금 내가 붙들고 싶은 질문이다.

새로운 공간을 기다리며

올해 가을, 나는 평창동의 새로운 공간으로 서재와 일터를 옮길 예정이다. 이어령 선생님과 강인숙 관장님이 지은 집이고, 영인문학관이 처음 시작된 자리다.

그 공간을 처음 보았을 때 설렘과 함께 조심스러움을 느꼈다. 존경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은 장소에 내 일을 가져간다는 것은 단순한 이사보다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집을 과거를 바라보는 기념관이나 나를 드러내는 전시장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살아 있는 일터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AI와 새로운 일하는 법을 실험하고, 강의에서 만난 질문을 다시 연구하는 곳이다. 내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대화와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의 다음 일을 돕는 곳이길 바란다.

서재는 책을 쌓아두는 방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사유가 다른 사람의 질문으로 건너가는 장소다. 새로운 평창동의 공간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곳이 아니라, 더 깊이 배우고 더 잘 나누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는 곳이 되길 기대한다.

곳간이 아니라 길

더배러의 3년을 돌아보며 내가 얻은 답은 아주 단순하다.

배움은 사용하고 나눌 때 자란다. 지식은 내 안에 잠글수록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를 건너며 계속 바뀌고 쓰임을 얻을 때 살아남는다.

그동안 나는 많이 배웠고, 많이 시험했고, 가르치면서 또 배웠다. 잘하고 싶은 조급함도 있었고, 내가 보는 방향을 더 빨리 이해해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3년의 사람들은 지식을 건넨다는 것이 설득이 아니라 대화이며, 속도보다 방향을 믿는 일임을 가르쳐주었다.

더배러는 지식의 곳간이 아니었다. 누군가 먼저 걸어본 길에 표지판을 남기고, 그것을 본 다른 사람이 자기만의 길을 내는 곳이었다. 길은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선명해진다.

다음 3년에도 나는 거창한 답을 약속하기보다 이 방식을 지키고 싶다. 배운 것을 쓰고, 직접 실험하고, 쓸모 있는 형태로 다듬어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 내가 받은 것을 내 곳간에 가두지 않고,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다음 걸음으로 보내는 일.

그것이 내가 더배러의 3년에서 배운 pay it forward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다.

내가 건넨 지식이 당신 안에서 어떤 길이 되었는지 듣고 싶다. 그리고 그 길이 언젠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길 바란다.

곳간은 지키는 사람의 것이지만, 길은 걷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더배러 3주년을 맞아, 구요한 드림.

이 글을 인용하려면
구요한. (2026). 곳간이 아니라 길이었다. 紙散(지산). https://jisan.cmdspace.work/posts/path-not-gra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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